목척교 홍명상가 앞, YMCA 앞, 선화교 등 시내 전역에 펼쳐진 국민평화대행진
6월 15일 서대전 네거리. 전국 최초로 학생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시내로 진입하자 1만여 명의 시민들이 합세 페포퍼그 차를 완전봉쇄 하고 있다
19870625 영등포역 시위에 앞서 미리 연좌점거하고 있는 경찰들
1987.07.09 이한열 집회 시위를 막는 전경들
1987.07.09 아현 고가도로 위를 지나고 있는 이한열 열사 운구행렬
1987.07.09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각종 깃발을 들고 신촌 거리를 지나는 이한열 열사 운구행렬
1987.06.19 남대문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하는 시위대
1987.06.10 서울역 앞에서 태극기와
1987.06.20 조계사 앞에서 민주화 요구시위를 벌이는 스님들과 대치 전경들의 모습
예비역들도 후배의 죽음 앞에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낮엔 거리를 누비다가도 밤늦은 시간에 하루투쟁을 평가하고 내일 투쟁을 결의하는 시민토론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학생들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하다.
서면로터리에서 1만5천여명이 넘는 시위대가 연좌시위를 벌이고 5천여명은 이튿날 새벽까지 태화쇼핑앞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부산진시장 네거리에서 연좌농성을 하는 시위대. 육교와 도로를 꽉 메운 부산시민의 거리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형제고 이웃이다.
경찰 폭행소식을접한 시민들은 대형 나무십자가 5개를 앞세워 카톨릭센타로 집결하기 시작하고 있다.
휘날리는 태극기가 87년 6월, 한반도의 현실을 이야기하듯 한층 더 선명해진다.
보림극장앞에서 민주당 국회의원과 학생, 시민1천여명이 운집하여 문현로터리 방향으로 진출하고 있다.
격렬한 시위가 있은 후 경찰에 잡힌 시민들이 보수사거리에서 고개를 숙인채 무릎을 꿇어 앉아있다.
대규모적인 시위를 막기위해 범내골 로타리에서 서면까지의 도로를 차단하고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지만, 부산시민과 학생들의 투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7, 3.3대회를 통해 경찰의 대각사 주변 봉쇄를 경험한 학생들이 일찌감치 외곽으로부터의 시위를 계획하고 하오 5시경 아미동 대학병원 앞에서 500여명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6시로 예정된 고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부사시민대회장인 대각사 주변을 봉쇄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날 또다시 국민의 품으로 날아든 독재의 칼, 최루탄
서면시장 한복판에서 열린 이 시위는 서면의 첫 시위였다.
6월 9일 미화당 앞, 610국민대회의 봉쇄작전을 펼치고 있는 전경들
제주시 중앙로와 광양로 일대 - 사진제공 서귀포 6월항쟁기념사업회
서귀포 중앙어린이 놀이터 경찰 저지선 돌파 - 사진제공 서귀포 6월항쟁기념사업회
서귀포 중정로에서 6월 민주항쟁 시위대의 행진 - 사진제공 서귀포 6월항쟁기념사업회
국제시장 상인들은 경찰에 쫓기던 시위학생들을 적극 숨겨주었다.
87년 6월 20일 명동 지하철 입구에서 스크럼을 짜고 시위를 벌이는 승가대 학생들(
6월 18일 부산의 시민, 학생들이 부산진 시장에서 서면로터리, 부산진구 전포동 네거리를 잇는 간선도로를 메운 채 시위하고 있다
6월 18일 신부들이 앞장서서 시위에 나서고 있다
87년 6월 19일 신세계백화점과 중앙우체국, 한국은행 앞에서 벌어진 시위는 가장 격렬했다
87년 6월 10일 전경들의 철통 같은 대오에 밀려 시위군중들이 신세계백화점 앞 분수대 쪽으로 쫓기고 있다
87년 6월 13일 명동의 중심가의 시위대. 최루탄을 피해 엎드려 있다
87년 6월 18일 남대문 일대에서 시위대와 전경들 그리고 사복경찰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다. 불 타고 있는 시위용품들
1987.06.01 6월 항쟁 중 명동성당 농성 전경
87년 6월 10일 한국은행 앞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중 부상당한 한 전경이 대학생들에게 이끌려 후송되고 있다
87년 6월 5일 때로는 교직원도 방독면을 쓰고 시위에 참가했다. 고려대 앞에서
87년 6월 10일 18시 성공회에서 집회 후 만세삼창하고 있는 국본집행부
87년 6월 10일 시청 앞 경적시위에 참가한 성남택시 노동자들
87년6월10일성남시청앞.‘ 호헌철폐, 독재타도’를외치며시위에참가한시민들
6월 19일 도청 앞 사거리를 가득메운 시위대열
6월 10일 육거리 옆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전경들
87년 6월 15일 경상대생진주시청앞농성(경남도민일보 제공)
마산 6?10대회, 어린교에서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방향으로 행진 중인 시위대
6·10대회 때 마산 불종거리에서 시위대의 공격으로 불탄 경찰 버스, 이날 마산에서는 모두 4대의 차량이 불타는 등 격렬한 시 위가 벌어졌다
6월 24일 원주시내 중심가. 사제단과 수녀 6백 명이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6월 20일 원주 원성군 농협. 페퍼포그를 발사하자 학생들이 드러누워‘비폭력’을 외치고 있다
6월 27일 춘천 명동.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전경들 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는 여성
광주시 동구 중앙로 중앙대교 부근의 6.10집회
광주 신한은행 앞 6·10집회(광주 금남로4가)
원각사 최루탄 발사에 스님(송광사 광주 포교당) 항의
전남대 의?치대생들의‘호헌철폐’‘, 최루탄 추방’등 현수막과 피켓 을 들고 가두시위
6월 10일 수원역 앞에 모인 6?10 군중
6월 18일 동수원 교회 앞. 최루탄 추방대회
6월 18일 수원 빈센트 병원 앞. 6·18 최루탄 추방대회
87년 6월 26일 반월당 네거리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 중인 시민들의 모습
87년 6월 26일 대구 명덕로터리 2·28기념탑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국민평화대행진 시위대가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흩어지고 있다
87년 6월 20일 대구백화점 앞에 모여 대중집회를 열고 있는 시위대
87년 6월 10일 6월 민주항쟁 당시 대구시내 중심가에서 유연창 목사님을 위시한 6·10대회 지도부가 시위를 시작하려는 모습
6월 18일 부산의 시민, 학생들이 부산진 시장에서 서면로터리, 부산진구 전포동 네거리를 잇는 간선도로를 메운 채 시위하고 있다
87년 7월 9일 이한열 군의 장례행렬. 역사를 창조한 죽음은 민주주의 청사에 불멸의 빛이 되었다
87년 7월 7일 이한열 군의 죽음에 항의하는 연세대생들. 전경들은 세브란스 병원 구내까지 쫓아들어 가 마구잡이로 최루탄 세례를 퍼붓고 있다
87년 5월 23일 종로 3가 파고다공원 일대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시위행렬에 함께 참가한 한 장애인이 전경들을 향해 우산대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87년 6월 19일 또다시 살벌해진 시위 모습. 고려대 학생들이 경찰에 밀려 학교 주변 민가로 쫓긴 뒤 전경들을 상대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87년 6월 15일 6·10항쟁의 승리를 가슴에 안고 명동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학생들(
87년 6월 10일 연세대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려 하자 전경들이 연세대 정문 맞은편에 있는 철길 다리 신촌 사거리로 나가는 입구를 봉쇄했다. 이에, 연와시위하고 있다
87년 6월 12일 서울 도심에서는 6·10항쟁 이후에도 연일 학생들과 시민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틈틈이 시위에 참가했다
부산의 한국해양대학교는 영도 옆의 부속도서인 조도에 위치해 있어서 방파제가 육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다. 6월 17일, 가톨릭센터 농성에 자극받은 해양대생들은 대열을 지어 육지로 진출을 시도했다. 경 찰은 이들을 막기 위해 해경 소방정까지 동원해야 했다(경찰의 채증사진)
부상자를 치료하는 의대생. 부산 국제시장을 돌며 진료활동을 하고 있다
87년 6월 17일 연세대 앞에서 전경들 틈새에 낀 한 학생의 처절한 울부짖음
87년 6월 10일 신세계 일대에서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전경들에 밀려 회현동 남산 3호터널 입구에서 대치 중인 모습
87년 6월 10일 남대문 옆 당시 서울시경 언저리에서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은 최루탄 가스에 마스크와 비닐봉지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87년 6월 10일 직격최루탄을 맞고 의식을 잃은 이한열 군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시위가 을지로 입구 도로까지 점령되었다. 가지런히 일렬횡대로 놓인 전경들의 헬멧 앞으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 있다
87년 6월 7일 고려대 정문앞에서 맨손으로 데모하는 학생들에게 대량으로 쏟아진 최루탄
중앙대 후문. 한 전경의 옷깃에 옮겨붙은 불길을 잡으려고 애쓰는 동료 전경들
고 이한열의 영안실 입구에서 독재타도 글귀가 새겨진 경찰용 방패를 들고 시위하는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