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역사의 주체로 보여주다

정 영훈(국립여성사전시관 관장)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여성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고 설립한, 국내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역사전시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국‧공‧사립 통틀어 박물관이 약 900개 있습니다만, 여성도 역사의 주체임을 보이고자 설립한 역사전시관은 국립여성사전시관이 유일합니다. 2002년 12월에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연혁은 결코 짧지 않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은 곳입니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보통의 박물관처럼 상설전시실이 있고, 기획전시실이 있습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매년 1~2번씩 특별기획전을 열고요. 또 수장고가 있어서 유물을 수집, 보존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 유수의 박물관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음, 그렇지만 국립여성사전시관을 생각하다보면, 보통의 역사전시관, 박물관에서는 갖지 않던 의문이 몇 가지 생길 것입니다.  

먼저, 여성의 역사를 전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을 했던 여성들을 드러내고 널리 알린다는 의미일까요? 예를 들어, 신라시대의 선덕여왕이 신라의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자세히 안내를 한다든지, 고려시대의 여성들이 재산의 분배나 가족 내 역할에 있어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린다든지 그렇게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 전시물도 있습니다. 2층 상설관에는 고려시대의 묘지명 속에서 독신여성이 폄하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생전의 기여로만 평가받았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여성 임윤지당이 성리학 연구에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그의 저술을 통해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여성독립운동가 470여명을 발굴하여 그 분들의 사진 및 작은 기록들을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성인물의 발굴, 수집, 재발견은 여성사전시관이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사진 (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또, 전시할 만한 유물, 여성의 것이라고 할 만한 유물은 어떤 것들이, 얼마나 있길래 전시관(박물관)을 운영하는 걸까요? 모두 알고 있다시피 역사란 사실 남성의 기록, 그중에서도 지배층의 기록이 아니었습니까? 문헌기록이든, 건축물이든, 박물이든, 기념비이든 상관없이 다 말입니다. 여성은 지난 역사에서 세상의 전면에 선 적이 없었던 존재들인데, 과연 어떤 유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물론 여성이 사용하던 가구나 그릇, 비녀나 가락지 노리개 같은 공예품은 많이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기존의 박물관에서도 익히 보아왔던 것이니까요. 굳이 여성사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수집할 이유가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기존의 박물관은 실재하는 유물에 기초하여 설립되고 성장했지요. 여성에게는 그런 유물이 적습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의 박물관이 가진 그런 유물, 보물은 여성사전시관에는 없습니다. 앞으로 발굴한다 해도 그 수가 많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여성사전시관의 약점이 아닙니다. 특징일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박물관은 19세기에 탄생한 근대적 기관입니다. 서구의 경우에는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성장했으며, 우리나라의 그것은 식민 지배를 벗어난 민족주의와 관련이 있지요. 물론 어떤 경우든 유물에 기초하여 운영되는 실증주의적 특징이 있고요. 그런데 20세기 후반 들어 이러한 남성중심적, 팽창적, 실증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대응으로 여성사박물관들이 건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역사학계의 민중 주체 연구의 확산에 힘입은 바 크고, 유물이 보편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몰성적인 것이라는 의식 확대와도 관련이 있지요. 피지배계급, 여성들이 역사의 주체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관점 말입니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이러한 세계적인 역사학의 흐름, 박물관의 변천과 더불어 설립되었습니다. 기왕에는 유물이 아니었던 것들, 그저 민속품이라고 불렸던 것들도 역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전시되고 시민을 위한 교육자료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예를 들어, 베틀이라는 유물이 있습니다. 대개 여성의 헌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리, 어머니의 고난사, 가족의 옷을 만들 옷감 등으로 연상될 겁니다. 그렇지만 베틀 위에서 여성의 노동을 거쳐 완성된 천은 세금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봉건사회에서 여성은 가족 내 필요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경제적 기능을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여성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재해석, 교육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조금 거칠더라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여성이 역사의 주체였음을 밝히고 알려 여성의 역사를 가시화하고, 모든 시민들에게 온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역사를 경험할 마당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 국립여성사전시관 전경 사진(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지금 전시 중인 특별기획전을 소개하면 위의 이야기들이 더 실감날 것 같습니다.  현재 여성사전시관은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전지구적 재난인 코로나19를 기록하고 후일의 역사 자료로 삼으려고 기획한 전시입니다. 2020년, 코로나19는 전인류의 과제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 전과 후로 나뉠 수 있다는 전망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2021년 역시 그럴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재난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시민 모두가 방역의 주체로 이른바 철벽 방어를 실천하고 있지만, 이후의 경제적 사회적 후폭풍은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여서 이 고통의 끝이 어디인지 낙담하게 됩니다.  


▲ 방역의 역사, 여성의 기록 전시 포스터(국립여성사전시관 제공)

그렇지만, 사실 방역의 역사는 깁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감염병과 싸워왔습니다. 그 병인(病因)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역신(疫神), 병균, 바이러스 등으로 달라졌지만,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재난이었다는 점에서는 같았습니다. 천연두는 잉카와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켰고, 페스트의 끝에 중세의 몰락이 있었지요.

가깝게는 개항 이후 우리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1894년 내무아문에 위생국을 설치했고, 전염병예방규칙을 발표해서 환자의 치료, 사망자보고와 의학조사, 환자의 집 소독, 전파차단 등 감염병에 대한 기초적인 방역지침을 마련합니다. 천연두예방접종 증명서인 「종두제증」을 보면 천연두 퇴치가 당시의 사회적 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09년에는 여성 종두인허원(접종시술자)을 선발한 기록도 보이고요. 저 악명 높은 1918년 스페인독감은 조선으로 건너와 무오년 감기가 되었고, 당시 조선 인구의 약 16% 정도가 감염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 새로운 감염병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한 번도 이 재난에 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삶을 일구고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지요. 기나긴 감염병의 역사 속에서도 결국 삶을 지키고 역사를 이어온 인류의 시간을 생각하며, 오늘 이 고통의 시간도 역시 지나가리라는 낙관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방역의 주체로 주어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감염병을 귀신의 짓이라 여겼던 시대에는 역신을 쫓는 제관으로 치료자, 방역자로 역할을 했고, 근대 이후 종두접종원으로, 간호사로, 의사로 일했습니다. 직업의 영역에서만 보아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가족 내에서 나이든 여성이 가진 치료, 돌봄의 경험과 지식은 아직 제대로 평가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른바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19세기 초에 나온,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규합총서』만 보아도 약초, 섭생 등 오늘날의 의료, 돌봄에 해당하는 지식들이 가득합니다. 참, 아시지요? 『규합총서』의 저자는 여성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방역과 관련한 근현대 유물 80여 점 뿐만 아니라 현재 방역의 최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 및 시민의 솔직한 경험이 담긴 영상물, 현장의 사진 등도 수십 점 전시했습니다. 음압병동에서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치료하고 돌본 이 여성들의 기록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귀중한 유물이 되겠지요. 그 유물은 박제되지 아니하고 계속 살아 말을 걸 것입니다. 우리의 유물은 그런 것입니다.

국립여성사전시관은 경기도 고양시(지하철3호선 화정역) 정부합동고양청사에 있습니다. 전시실 및 수장고의 규모, 전시관의 위치 등이 ‘국립’ 그리고 ‘여성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작고 외지다는 지적이 지난 십 수 년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전 준비, 아니 새로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성 모두의 염원을 모아, 시민 모두의 염원을 담아 우리의 역사를 보다 온전하고 풍부하게 할 국립여성사박물관을 건립하려합니다. 물론 박물관이 완공되는 그 날까지, 국립여성사전시관은 여성을 역사의 주체로 가시화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