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현대자동차에도 1985년 초에 작은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상범 씨, 하인규 씨 등 사회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던 5명의 노동자들이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회사 근처 양정교회에 모여 지역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학습과 현장문제를 토론하였다. 이들의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작업현장 문제로 모아졌다. 노동관계 서적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노동조합을 만들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키우면서 동료들의 잠자는 권리의식을 깨우기 위해 유인물 작업을 전개했다. 이런 불씨들이 1987년 6·29선언이라는 정치·사회적 공간이 열려지자 계급적인 직관으로 이때임을 직시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많은 주민들은 노동자들이 왜 싸우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에 든든한 지지자가 되기도 하였다.역사적인 대장정 18일의 대투쟁은 방어진 미포만에 동 터 올랐다 전날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모여 오늘은 결판을 낼 듯이 아예 자신이 쓰던 장비인 덤프트럭, 소방차, 지게차, 샌딩머신 등을 들고 나왔고, 그 누구도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되어 나타났다. 4킬로미터로 늘어선 노동자들의 대열이 “나 태어난 이 강산에 노동자되어…….” “야! 야! 야야야야! 꽃 바구니 옆에 끼고…….” |
글 김호규 1988년에 울산에 내려가 현대정공에 취업하여 현재까지 노동운동을 하고 있으며 현대정공 수석부위원장을 지냈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금속산업연맹 사무처장을 맡았다. 현재 현대자동차노동조합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황석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