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민주일주 여행(1) 20180827-0828 서울

이번 민주야 여행가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우리 팀은 국가보안법을 테마로 하여 서울, 부산, 통영, 여수의 순으로 탐방을 하고자 계획하였다.
우리의 여정은 서울에서 시작되었는데, 가장 먼저 방문하고자 했던 곳은 4.19 혁명 중심지 표지석이었기에 우리 다섯은 광화문에서 만나게 되었다.

4.19 혁명 중심지 표지석
첫 유적지 방문부터 우리 팀은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4.19 비석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문제였다. 정말 핸드폰 네비게이션이나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비석은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비석을 찾아 주변만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다 알아낸 슬픈 사실... 4.19 중심비에 대한 인터넷 기록들이 2010년에 멈춰있는 것이었다...ㅠㅠ 알고 보니 현재 비석이 있는 장소는 공사 중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팀은 슬픈 마음을 뒤로 한채 다음 장소로 바로 이동하였다...


옛 대법원 (현 서울 시립미술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우리 팀은 바로 걸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바로 옛 대법원이 있는 서울 시립미술관이었다. 가는 길에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는데 너무 운치가 있어 우리 팀원들은 모두 감탄하였다!

돌담길을 지나서...

미술관에 도착!
이곳은 옛 대법원 청사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여러 층을 돌아다니면서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고, 간단하게 1층의 카페에서 음료를 마셨다. 음료를 마시면서 과거 사법살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얼마나 사법부가 비민주적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심 있는 전시가 있었지만 시간상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ㅠ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그리고 우리 팀은 버스를 타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이동하였다. 개인적으로 이곳은 우리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방문을 계획한 곳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기도 했고, 전시를 실제 관람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제와 관련된 전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가 조선인들을 얼마나 잔혹하게 고문했는지를 보여주는 고문 도구,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사진들, 수감당한 조선인들의 수형표 등을 전시해두었다.


처음에 우리 팀은 역사관을 둘러보면서 일제에 대한 분노를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당시 일제에 의해 행해졌던 생체 실험, 고문 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식민지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악랄하게 탄압할 수 있는지, 실제 다른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어떤 식으로 식민지를 관리했는지 등등.) 하지만 역사관을 모두 둘러본 후, 팀원들 모두 약간 이상한 것을 느꼈다. 서대문 형무소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이 너무 일제에 의한 조선인 탄압에만 중심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모두 공통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서 광복 이후에 서대문 형무소가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당시 민주화 특별전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역사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서 민주화 운동 진압에 대한 기록들을 꽤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를 전시한 방식이 일제의 만행을 전시한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느낌이 실제로 의도된 것인지를 확인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 시대 고문 시설로 쓰이던 형무소를 계속 유지하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데 사용하였다는 점도 비상식적으로 느껴졌다.

다음날 우리는 과거 대공분실이 있었던 경찰청 인권센터에 가기 위해 남영역에서 모였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역에 내려 인권센터 건물을 대면한 우리들은 모두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건물 자체가 주는 위압감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날 특히 날씨 또한 비가 오다 흐렸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딱 인권센터로 들어가는 건물 앞에는 우리가 영화 <1987>에서 보았던 까만색 철문이 버티고 서있었고, 건물 색이나 존재 자체가 주변 배경과 너무나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출입증을 받아서 센터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더 섬뜩해지게 되었다. 센터 안에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고, 건물 또한 예전 대공분실 건물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굉장히 삭막하였다. 

일단 1층에 들어간 우리는 당시 이 건물이 어떻게 쓰였는지, 지금은 인권센터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또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고 김근태 의원 고문 사건 등에 대한 정보 또한 알게 되었다.
또 그 옆에 인권에 관한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생각을 한 줄 적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1층을 전부 둘러본 우리는 옆 쪽문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한 번 더 우리 팀은 뜨악하게 되었는데, 계단이 나선형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서 우리는 어지러웠고,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고 있는 건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었다. 나선형 계단이 끝나는 층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4층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건물이 고문을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있는지가 크게 와닿게 되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고문실들의 똑같은 문들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고 박종철 군이 사망한 고문실은 기념관처럼 개조해 두었다. 

고문실들을 둘러본 후에는 5층으로 이동해서 고 박종철 군의 유품들을 전시해둔 기념실을 관람하였다. 

실제 학생이었을 때 입었던 옷들, 가족들에게 썼던 편지, 살아생전 직접 쳤던 기타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와 같은 너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답답해졌다. 이 전시장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당대에 대학생이었다면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또 얼마나 깊게 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문록을 쓰고 건물을 떠나면서도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서 주변이 어두워지자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자 정교하게 설계된 건물,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당한 평범한 대학생을 직접 직면하자 우리는 절로 숙연해졌다. 개인적으로 이번 민주일주 여행에 있어서 가장 느낀 점이 많은 곳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남영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부산으로 가기 위해 수서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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