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마지막날)에 방문한 곳은 5,18민주묘지, 전남대, 조선대, 5.18민주화 운동기록관, 한림대입니다.

5.18민주묘지는 5.18묘역이라고도 불리면 광주민주항쟁을 기리는 곳입니다. 묘역 내에는 5.18영령의 묘764기가 있으며, 역사공간, 민주광장, 참배광장, 전시공간, 상징조형물, 광주민주화운동추모탑, 역사마당, 헌수기념비, 준공기념탑 등이 있습니다.



5.18 민주 항쟁은 1980년 5월, 12.12사태와 당시의 군부에 의해 벌어진 정권 장악 음모에 대항해 일어난 전국적인 저항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자행된 대표적인 반민주 학살 사건이며, 이에 저항한 시민 민주항쟁입니다.

이 묘지는 여기서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의 넋을 기리며, 이 땅에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발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민주 성지를 내손으로 가꾸기 위해 시작한 민주나무 헌수운동은 5.18의 숭고한 정신을 국내, 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민주묘지는 이번 탐방 때뿐만 아니라 나중에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와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묘지 방문 후 찾아간 곳은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입니다.

조선대와 전남대 학생들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항쟁기간에는 시민군지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대학교 체육관에서는 1980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시내 곳곳에서 계엄군에게 끌려온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을 수용하였으며, 잔혹한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전남대학교는 5.18민중항쟁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당겨진 항쟁의 불씨가 위대한 광주 정신으로 승화되어 한국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전남대에서는 5.18기념관 및 봉지 5.18광장, 윤상원열사 공원, 박관현 열사 혁명정신 계승비, 승희꽃밭 등에 방문하였습니다.



전남대학교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피어나다”조각상으로 광주정신인 민주, 인권, 평화를 상징하는 3개의 꽃잎이 승화의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을 형상화한 조각이라고 합니다. 


그 후 승희 코스모스 꽃밭도 봤는데, 이곳은 “내 서랍에 코스모스씨가 있으니 2만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주라. 항상 함께하고싶다.”라는 박승희 열사의 유서내용에 따라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꽃밭이라고 합니다. 박승희 열사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과 시대의 불감증에 괴로워하였고, 4월 29일 백도 앞에서 열린 규탄대회 중에 “노태우정권 타도! 미국놈들 몰아내자! 2만학우여 단결하라!”를 위치며 분신하였습니다. 저희가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코스모스가 만개해있지 않아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박승희 열사에 대해 감사할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박승희 열사뿐만 아니라 많은 열사분들의 추모비에 적힌 글을 읽고, 열사에 대해 알아보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김동수열사, 류재을열사, 김학수열사, 이철규열사 추모비에 다녀왔습니다.

류재을열사는 노동법, 안기부법, 부정, 부패 등등 수없이 많은 죄를 알리기 위해 열린 “김영삼정권 규탄 남총련집회”에 참가하였으며 사수대로 활동하던 중 운명하셨습니다. 이때 집회의 장소는 조선대 정문으로, 조선대의 정문을 지나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류재을열사는 단과대학 소모임인 지방자치연구회에 가입하면서 사회 현실에 눈뜨기 시작하였고, 민주화운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대학교란 작은 사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에 부당하다고 소리치셨던 용맹스러운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김학수열사는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하였으며 박철웅총장 퇴진 및 변학영 교수 퇴진 등 학원민주화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군생활 후 복학한 뒤에는 총학생회 예비역 협의회 총무부장을 맡았고,예비군 훈련 부당성 개성 요구 농성전개, 3당합당 반대투쟁, 이철규열사 사인진상 규명 투쟁, 5.18진상규명 투쟁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열사는 과로로 입원을 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5.18 10부기 집회에 참석하였고, 참석 후 공권력의 과잉 진압과정 중에 과도한 최루탄흡입으로 쓰러졌으며, 약 20일 후 간경화 심부전증으로 사망하셨습니다.



이철규열사는 조선대 민주화자율추진위원회, 반독재투쟁위원회 등 활발한 민주화운동을 하였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차례의 수배를 받았습니다. 1989년5월3일, 청암교에서 경찰의 검문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하여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열사의 죽음은 노태우 정부 시기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의문사 사건으로 남아 있으며, 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도 의문사에 대해 재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분의 생애를 보며 느낀 것은 민주화운동을 한다는 것은 가슴속의 뜨거운 애국심으로, 후세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하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고 앞으로의 더 큰 자유를 위해 운동하신 열사를 보고 저희도 이와 같은 마음을 본받고자 합니다.





5.18민주화 운동 기록관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었던 당시의 상황들을 영상, 사진 등을 이용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현실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의 모습을 보았고, 민주운동을 하며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그리워하는 남겨진 분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한림대학교입니다. 한림대학교 내에는 권오복 열사의 추모비가 권오복열사는 한림대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강릉지역에서 문예운동을 하였습니다. 2001년도부터 경기서부지역건설노동조합 현장 조직가로 활동하면서 건설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또한 안산지역에서 문예운동을 준비하면서 노래패 ‘정면돌파’ 성원으로 활동하며 노동자문화운동에 앞장서셨습니다. 그 당시의 노동자들에게는 민주주의란 없이 오로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권오복 열사는 과거의 이런 잘못된 인식이 변해야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사회에 오랜 세월동안 바뀌지 않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앞장서고, 당당히 맞서셨던 모습을 상상하며 권오복열사 추모비에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그의 노력을 기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춘천 내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좋은 기회였습니다.

탐방을 마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이번 탐방을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관련 탐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