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희 투피스 조는 Tomorrow peace의 줄임말로 내일의 평화를 꿈꾸는 청년

기행단입니다.


저희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장소들을 탐방하였습니다.


과거에 관한 장소로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전쟁기념관, 거제도 포로수용소 등을 다녀왔고 한반도 역사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에 관한 장소로는 사드가 배치중인 성주(김천역), 부산 미군 8부두를 방문하여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에 대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장소로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을 방문하여 통일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아래는 조원 개별 감상문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한반도 평화의 과거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관람을 하고 나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을 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8년전과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공간일 텐데 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목포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가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했던 평화를 위한 활동들에 대해 알아보며 그 활동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동을 하셨는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해봤다. 그리고 외신들의 평가를 통해 그 당시에 했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4번의 고비를 넘기며 꿋꿋이 민족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셨던 김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됨에 감사하였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돌아보며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를 향상 노력을 느꼈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현재 북한과의 관계가 김대중 정부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남한과 북한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고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시기지만 과거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남과 북이 다시 관계가 악화되는 일을 겪어왔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기념관

6.25 전쟁실과 유엔실을 관람하면서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었다. 6.25 전쟁 당시의 물건들과 종군 기자가 찍은 당시 모습, 또 우리나라에 군대를 파견한 나라의 당시 군대에 대한 정보 등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알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물건과 글을 보고 6.25전쟁에 대한 예전이 인식이나 가치관과 현재의 가치관이 다름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 차이에 대해 인지하고 차이를 이해하며 관람했다. 한반도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배경부터 진행과정 그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을 알게 되었고, 민족의 아픔에 대해 회상해보며 통일에 대한 생각과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깨달음, 전쟁에 대한 후회,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실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기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제가 평화인 만큼 전쟁기념관을 방문 할지말지에 대해서 조원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결론은 이 감상문을 쓰듯이 방문하자로 났지만, 그 이유는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을 방문하니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다시 마주 할 수 있었고 한반도의 평화를 다시 바라게 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


또 거제를 가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거제에 도착하니 비가 그쳐서 편안하게 포로수용소로 갈 수 있었다. 포로수용소를 방문했지만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고 내용도 많이 부실하다는 느낌도 받았고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라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결국 포로수용소를 나올 때까지 기대보다 많은 실망을 했고 아쉬움도 컸다.

6.25전쟁 이후에 잡힌 전쟁포로들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당시 참혹한 포로들의 생활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였다. 납치사건 이후에 세워진 mp다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 다리는 피난민과 포로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었는데, 이는 마음대로 출입이 불가능함을 뜻하고, 나아가 언제 석방이 될지 기약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여 포로에 대한 처우가 가혹했으며 당시의 전쟁포로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포로가 되어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압받은 삶을 살았을 것을 생각하며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포로석방의 정책에 따라 석방이 되었으나 가진 것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타향살이를 하게 된 포로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당시 포로들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생각했던 것 보다 실망스러웠다. 몇 년간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보수 유지가 잘 되지 않는 이유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관심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과거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더 좋은 미래를 맞이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통일의 집

통일의 집을 방문하고 거기에 있는 문익환 목사의 유품과 생가를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곳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북한에서 보낸 위문품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한다면 선물도 쉽게 교환할 수 있는 한 민족인데 이념을 사이에 두고 한민족이 같이 서있을 수 없음에 안타까웠다. 다음 일정 시간 관계상 오랜 시간 관람을 할 수 없었지만 기억에 남는 장소였다.

문익환 목사님의 자택이기도 했던 통일의 집에서 문익환 목사님의 일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민간인의 몸으로 분단이 된 이후 북에 가서 통일을 위한 노력과 민족을 위한 행동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통일에 대해 좋지 않은 가지던 사람들이 많은 그 시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준 목사님께 경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돌아오면 처벌을 받을 것을 알고도 조국에 돌아와 통일의 희망을 보여주신 목사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의 입장에 대입하여 생각을 해봤지만 용기가 나지 않을 생각을 하였더니 더 대단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통일에 대해서 가장 말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누구보다 앞서서 통일을 외치셨던 문익환 목사님의 생가를 둘러보았다. 영상에서 나오는 그 분의 목소리가 통일을 얼마나 염원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분단의 아픔을 둘러보는 과거 기행이었지만 통일의 집에서 만큼은 아픔보다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였다.

통일아시아드 공원


우리는 부산 사하구에 있는 통일 아시아드공원을 향했다. 통일아 시아드공원은 2002년 아시안 게임 때 북한 응원단이 승선한 망경봉호가 정박했던 곳에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기원하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관리도 잘 돼있지 않아서 인지 많이 녹슨 구조물들이 많이 위치해 있었다. 그 구조물에는 아시안 게임 참여국들이 나타나 있었지만 많이 훼손되어 있거나 녹이 슬어서 확인하기가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많이 아쉬웠고 이런 시설에 대해서 관리가 꾸준히 되었으면 좋겠고 홍보도 많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한반도 평화의 현재


부산 미군 8부두


남구 주민 행동의 날에 8부두를 다시 방문하였다. 예전에 기행 등에서 집회를 참가한 것이나 길을 지나다가 집회를 구경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고 직접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집회의 시작부터 본 것이 아니라 시간 관계상 중간에 참여했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었다. 하지만 집회를 참여해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정의롭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면 내가 나서서 집회 같은 것을 참여하여 행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해주는 날이었던 거 같다.

부산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부산 시민의 주권을 위협하는 미군 8부두의 탄저균실험을 강력히 비판하는 마음으로 8부두 집회에 참가하였다. 우리국민과 한반도를 위협하는 무기를 대한민국에서 실험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한반도를 위험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 사드배치


사드 집회현장을 보지는 못했으나 사드 집회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왔었던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집회 당시의 현장을 상상해보고 집회에 대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사드에 대해 잘 몰랐고, 집회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상황에서 사드와 집회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집회현장을 보고 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에 집회현장에 참여했던 사진을 보고 그 집회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기행일정에 맞지 않아서 집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아쉬웠다.

사드반대 집회현장에 직접참가 했을 때 당시만 해도 사드는 우리나라에서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같은 민족을 겨누고 있는 미사일은 우리나라에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사드라는 미사일 무기는 평화국면으로 나아가는 한반도에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는 무기로 언젠가 김천역을 다시 방문 하였을 때는 사드가 성주에서 사라지고 난 뒤이길 희망한다.


한반도 평화의 미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임진각 통일전망대에서 통일대교와 경의선을 보고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곳을 관람하기 위해 가는 길에는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한 대 서있었는데 그 기관차에는 총알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민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듯 했다. 그리고 전에 다니던 경의선의 상행선 교각 위에 지어진 관광지를 다녀오면서 6.25전쟁에 있었던 총알자국을 보며 민족의 아픔을 다시 되새김질 하였다. 민간인 통제선을 넘었을 때 괜히 통일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통일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오는 길에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에 갔는데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후에 찾아보니 6.25전쟁이 휴전이 된 이후 포로의 교환을 위해 건설된 다리라고 했다. 이후 기회가 된다면 기차를 타고 도라산역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더 나중에 통일이 된다면 도라산역을 넘어 경의선을 통해 북한여행을 다녀오거나 육로를 통한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임진각 옆에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 있어서 다녀왔는데 공감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납북자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납북자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통일을 위한 노력과 이산가족 상봉, 납북자 귀환을 위한 노력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완전히 그쳤다. 그래서 우리는 전망대에 올라 먼저 주변을 구경하고 망원경으로 더 멀리를 구경하면서 감탄했다. 그리고 자유의 다리를 건너며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북한에 가까이 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흘러 다음에는 더 가까이 갈 수 있거나 혹은 통일이 이루어져 북한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조원들 모두 우리들의 생각보다 가까운 북한을 생각하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산만 넘어가면 북한이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북한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날이 올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슬픔이 밀려왔다. 왜 우리는 아직까지도 서로 총을 겨누고 있어야 하는 것 일까. 현재 한반도는 평화를 맞이하기까지 한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된다. 이런 때야 말로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모아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