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중학교때부터 친구로 지내다 홍익대, 명지대, 부산대, 부경대 등으로 대학생활을 위해 뿔뿔히 흩어져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2017 민주야 여행가자!>를 계기로 다시 만났습니다.



민주화(花) 모둠은 지난 8월 4일(금)부터 6일(일) 일정으로 `응답하라 1987 - 청년 박종철 그의 자취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부산에서 시작하여 서울, 경기도까지 박종철 열사의 삶을 죽 따라가는 탐방활동을 펼쳤습니다.



사전에 박종철 열사에 대한 조사를 꼼꼼히 해서 박종철 열사의 영정이 있던 사리암과 이후 다시 옮겨진 성전암을 찾았고, 화장 후 산골한 임진강과 산골한 곳의 흙을 관에 담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가묘를 만든 것까지 확인하고 탐방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아무리 짓밟아도 싹을 틔우는 들꽃처럼, 억압 당할지라도 끝내 결실을 이루는 민주화라는 꽃들이 한데 모여 민주화의 꽃길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여행할 생각"이라고 탐방 포부를 밝혔었는데 33도가 훌쩍 넘는 폭염속에서 `민주花` 모둠원들은 서로 어떤 질문들과 대답들을 주고 받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거 괜찮은데? 여행 가는데 돈도 주네? 해볼만 한데? 하는 생각이 다들 통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했던 `2017 민주야 여행가자!`였다네요. 



그랬던 그들이 박종철 열사의 흔적을 찾아 탐방하면서 갖게되는 자기 성찰의 시간과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각 탐방지별로 기록한 답사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전두환이 독재를 했고,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다 죽어서 사람들이 6월에 들고 일어나 전두환을 몰아냈다. 그렇지만 다음 대통령은 전두환 친구인 노태우가 됐다.`

어쩌면 이 정도로 간략히 이해하고, 또 이 정도 알면 다 알았다고 굳이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민주야 여행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일궈낸 지금의 민주주의.. 그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남은 몫이다."



"부당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손길 내미는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길로 이끈다는 것, <민주야 여행가자>를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답사기 마지막에 애초 탐방계획서에 썼던 민주화(花) 모둠명이 만들어진 의미를 다시 한 번 적었는데 탐방 전과 탐방 후 그 구절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네요.



"들꽃을 아무리 짓밟아도 끝내 어딘가에서는 꽃을 피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억압하려 해도 민주화의 꽃은 피고 만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조 이름을 민주花로 지었다. 민주花가 모여 민주화의 꽃길을 걷자는 의미"



이번 여행이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과 함께 민주주의를 떠올릴 수 있는 뜻깊은 탐방활동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민주花 모둠의 답사기가 현재 접속이 되지 않아 이들이 제작한 카드뉴스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