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고 김의기 열사 추모비

故 김의기열사 추모비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1번지 서강대학교 
김의기(서강대 학생, 1980년 5월 30일 5․18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요구하면 투신)

<전면>
故 김의기열사 추모비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후면>

열사의 약력

1959년 경북 영주 출생 76년 서강대학교 경상대 무역학과 입학
76년 서강 KUSA(유네스코 학생회) 가입 79년 서강대 농촌봉사 활동대장 역임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목격 5월 30일 동포에게 남기는 글을 남기시고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 순국
80년 6월 경기도 일산 기독교 공원묘지에 묻힘
80년 8월 서강대학교 졸업예정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자유 시민으로서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 것인가의 
동포에게 드리는 글 중에서

1988년 5월 30일
육천 서강 학우 일동


<모발 안치 알림비>

여기에 고 김의기 열사의 모발을 안치합니다.

광주민중항쟁 19년 5월 30일
고 김의기열사 19주기 추모제 92학번 준비위


<알림판>

고 김의기 열사의 삶
김의기 열사는 1959년 경북 영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76년 서강대 무역학과에 입학하였다.
열사는 청년시절 모순된 사회 현실을 보면서 농민운동과 학생운동에 헌신하였다.
열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역사를 진실을 온 국민에게 밝히고자 1980년 5월 30일 종로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 산화하였다.
이에 열사의 정의로운 뜻과 애국적 삶을 기리기 위해 여기 의기촌에 추모비를 세운다.

<부대시설>

동포에게 드리는 글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기어 놓으려 하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 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가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피를 뜨거운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정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 동안 살벌한 총검 아래 갖는 압제와 만행을 자행하던 박 유신정권은 그 수괴가 피를 뿌리고 쓰러졌으나 그 잔당들에 의해 더욱 가혹한 탄압과 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동안 허위적 통계 숫자와 사이비 경제이론으로 민중의 생활을 도탄에 몰아넣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 일부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제외한 온 민중이 받는 생존권의 위협이라는 것으로 톡톡히 보고 있다. 유신잔당들을 이제 그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자유 시민으로서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 것인가? 또 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 것인가?
동포여, 일어나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 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 유신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동포여! 내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 바쳐 싸우자. 동포여!
1980년 5월 30일 오후 4시 35분 김의기

<조형물> - 후면

<<김의기 그는>>
참 순박한 사람
부모님에게는 장한 아들
형과 누이에게는 다정한 이
수줍은 얼굴 맑은 눈길
끌려간 벗들에게나
가난한 이웃들에게나
이 땅의 삶을 짊어진 노동자 농민에게나
묵묵히 다가서서 손을 내밀던 사람

김의기 그는
외롭고 쓸쓸하였네
적막한 밤중에 홀로 일어나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갔네
역사의 구비마다 고여 있는 원혼들의 통곡
거리마다 웅크린 피맺힌 한숨
그 서러운 사랑 노래를
날 밝으면 나직하게 조리던 사람

미친 군화 발소리 총칼 소리 대포 소리
해방의 깃발 찢기는 비명 소리
평등의 비원 뭉개지는 울음소리
민주주의가 매장되며 난자당하는 소리
오월의 흉측한 소문 따라
빛고을을 찾아간 사람

부르튼 입술과 떨리는 가슴으로
불씨를 지핀 이여
함부로 내동댕이쳐진 부러진 뼈여
통곡도 만장도 없이 흩어진 살이여
부러지고 흩어져서도 오직 한 뜻으로 외치던 이여
깨어나라 동포여, 미친 군부 독재에, 불의에, 죽음에,
항거하라, 외쳐라, 모여라, 두려워 마라 --
그 짧은 순간 우리 가슴에 새겨진 그의 외침
새기고 새겨 겹쳐진 또 다른 이름들
마침내 모두들 모여 그 이름들 불러가며
치욕의 삶을 깨어버렸네
서로 어깨를 거머쥐었네
얼어붙은 입들에서 아우성 터져 나왔네
다시 부르라 민주 민중 평등 평화 통일의 노래
부르고 불러야 할 사랑 노래

김의기 이제 열사가 된 그대
그대를 키운 이 서강언덕에서
새순 돋으면 열정의 꽃으로
바람 불면 유유한 구름으로
눈 내리면 푸른 외로움으로
후배들 속에 길이 남으시라

2006년 5월 서강민주동우회


<사건적 배경>

1959년 4월 20일 경북 영주군 용암리에서 김억 선생과 권채봉 여사의 4남 2녀 중 막내로 출생
1976년 3월 서강대학교 경상대 무역학과 입학. KUSA 가입
1977년     서강대 KUSA 하계 농촌활동 대장 (강원도)
1978년 봄  후배들과 소그룹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농업 문제연구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
1978년 여름 서강대 하계 농촌활동 대장 역임
1978년 9월  감리교 청년회 전국 연합회 (감·청·연) 참여
1978년 12월 서강대 등의 농촌활동 지도
1979년 3월  감·청·연 제 22차 여름 선교 교육대회 홍보 위원
1979년 8월  서강대 농촌활동 지도 및 하계 농촌활동 참여(고문 및 규율부장)  감·청·연 제 22차 여름 선교 교육대회 홍보 위원
1979년 8월  서강대에서 근대사 연구모임 주도
1979년 10월 28일 서강대 교내시위 계획. 10·26 사태로 무산
1979년 12월 서강대 민속문화 연구반 농촌활동 지도
1980년 2월  서강대 총학생회 부활 추진위원회 활동에 적극 참여. 감·청·연 농촌 선교 위원장. 기독교 청년협의회(E.Y.C) 농촌 선교 분과위원장
1980년 3월~5월 농촌 (전남지방)과 서울을 왕래하며 농촌문제 정리. 농촌활동 자료집 발간에 주력 
1980년 4월  “농촌활동 안내서” 기획, 제작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목격
1980년 5월 30일 오후 4시 30분경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종로5가 기독교 회관 6층(607호)에서 떨어져 순국
1980년 6월 2일 서울대학병원 영결식장에서 감·청·연, 기·청, 형제교회 주최로 영결 예배 거행. 경기도 금촌 기독교 공원묘지에 묻힘
(이상 의기촌 - 김의기열사 추모 홈페이지 www.sogangi.net)  

방문인증 갤러리

대광(大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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