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기념관

 
무위당 기념관은 2007년 9월 장일순 선생님의 삶과 사상의 자취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접하고 느끼고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밝음신협(033-747-4579) 건물 4층에 선생님의 유품과 작품, 사진, 소개글이 담긴 기념관을 마련하였음.

<사무실 내부에 부착된 말씀>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 중에서도 대단한 사건입니다. 태어난 존재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거룩합니다. 이 사실만은 꼭 명심해야 할 우리의 진정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가끔 한밤에 풀섶에서 들여오는 벌레소리에 크게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면 내 일상의 생활은 생활이 아니고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이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의 작은 벌레가 엄숙하게 가르쳐줄 때에 그 벌레는 나의 거룩한 스승이요. 참생명을 지닌 자의 모습은 저래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기게 됩니다.
 무위당 선생님 말씀 중에서

* 무위당 장일순  
장일순(교육가, 사회운동가, 1994년 5월 22일 사망)

<일대기와 활동>
◦ 1928년 10월 16일 원주에서 장복흥과 김복희의 차남으로 출생
◦ 원주초등학교 졸업
◦ 천주교 세례 : 세례명 요한
◦ 배재중학교 졸업. 경성공업전문학교(현 서울대) 입학, 국대안 반대로 제적
◦ 서울대학교 미학과 입학. 한국전쟁기 군속(거제도 포로수용소 통역관)으로 근무
◦ 1952년 귀향 후 원주에서 생활
◦ 1953년 성육고등공민학교 근무 중 학교인수 교장취임
◦ 1954년 대성학원 이사장 - 대성중고 설립
◦ 1958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
◦ 1960년 사회대중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
◦ 1960년 시인 김지하를 만남
◦ 1977년부터 한살림운동 전개
◦ 1985년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을 창립
◦ 1988년 한살림 운동 활성화를 위해 인사동에서 시화전 개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작품을 구매함

<민주화운동 관련 활동>
◦ 1961년 5월 18일 “중립화 평화 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 되어 5․16쿠데타 이후 군사재판을 받음. 평화통일 주창자로 8년 형을 선고받고 3년을 복역
◦ 복역 후 대성중고등학교 이사장에 복귀했으나, 취임 6개월 만에 ‘한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직위를 박탈당함
◦ 1963년 출옥 이후 정치정화법, 사회보안법 대상자로 피압박 생활을 함
◦ 1965년 지학순 주교를 만나 뜻을 함께 함
◦ 1971년 10월 지학순과 함께 사회정의구현을 촉구하는 가두시위 전개
◦ 1970년대 초반 결성된 ‘민통련’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숨은 주역이었고, 산파였음
◦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자 관련자들의 석방 활동 전개
◦ 농민, 노동자, 어민, 의식개혁운동
◦ 농민운동, 유기농운동, 협동조합운동(신협운동, 소비자협동조합운동, 농협개혁운동), 환경운동, 한살림운동

<관련 저술> 
◦ 이현주 교사 대담 『노자 이야기』

◦ 장일순은 호를 호암(湖岩)에서 1960년대에는 청강(靑江)으로, 1970년대는 무위당(無爲堂)으로, 1980년대에는 일속자(一粟子)로 바꿔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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