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민주혁명학생위령비




<우측>
民主革命學生慰靈碑

<좌측>
경기남아의 피여
경기남아의 거룩한 이름이여 그 가슴속에서 터져 나온 피여! 위대한 피여!
겨레의 역사 위에 검은 점을 찍은 전제와 탄압과 착취와 기만과 온갖 악의 권화인 지독한 독재였지만 이 피 앞에 선 꺼꾸러졌다니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나니 오! 피에 젖은 젊은 사자들이여 잠들어 말이 없는 어린 영웅들이여 우리는 듣노라 그대들의 외침을 우리는 보노라 이들에 잠들어 말이 없는 어린 영웅들이여 우리는 듣노라 그대들의 외침을 우리는 보노라 이 돌에 어린 그대들의 넋을 꽃은 졌도다 피기도 전에 그 봉오리가 뿌린 피는 그러나 방울방울 다시 꽃으로 맺힌다 민주의 꽃이 자유의 꽃이 피련다. 평화와 번영의 향기가 무르녹으련다. 경기남아의 장엄한 기백이여 그대들의 부활을 맹세코 믿으련다. 어깨를 걷고 저 이 돌에 기대어 보노라 손을 잡고파 그 뿌다구니를 어루만지노라

단기 3293년 10월 3일
이희승 지음 김충현 적음


위령비 이전에 즈음하여

우리 학교가 1976년 화동에서 이 삼성동으로 이전해올 때 안타깝게도 이 위령비를 함께 옮겨오지 못하고 활동 교정에 외롭게 남겨두고 와 뜻있는 동문들이 항상 아쉬워해 왔다.
그러던 중 희생 동문들과 학교생활을 함께 했던 동기들인 55회 56회 57회 58회 동기회에서 후배 재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선배들의 뜨거운 열정과 숭고한 정신을 본받도록 옮겨왔으면 좋겠다는 학교 측의 뜻에 공감하고 이전 경비를 기꺼이 부담함으로써 드디어 개교 102주년을 맞이하여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네 명의 희생자 중 최정규(55회), 박동훈(56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재학 중이었으며, 고완기(57회와 동기)와 이종량(58회와 동기)은 각각 고등학교 3학년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2002. 10. 2
경기고등학교장  민 홍 기


<사건적 배경>
◦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의 반 이승만․자유당 시위 발생
◦ 3월 8, 10일 대전, 수원에서 학생들의 반 이승만․자유당 시위 발생
◦ 3월 14일 서울에서 학생 시위
◦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 마산에서 학생 및 시민들과 민주당이 주도한 시위 발생
◦ 3월 23일 내무부장관 최인기의 사표 수리
◦ 3월 24일 부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 전개
◦ 4월 6일 서울과 부산 등에서 학생 시위
◦ 4월 11일 마산시 중앙부두에서 김주열 사체가 발견되면서 제2차 마산의거 발발
◦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주도한 도심 시위 발생
◦ 4월 19일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지역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 4월 23일 장면박사 부통령직 사임
◦ 4월 24일 이기붕이 부통령 당선 및 모든 공직 사퇴 발표
◦ 4월 25일 교수단 시위
◦ 4월 26일 이승만 하야

<희생자 발생 사항>
◦ 최정규 : 1960. 4. 19. 중앙청 앞 시위 중 총상 사망
◦ 박동훈 : 1960. 4. 19. 경무대 앞 시위 중 총상 사망
◦ 고완기 : 1960. 4. 19. 종로3가 시위 중 총상 사망
◦ 이종량 : 1960. 4. 19. 조선호텔 앞 시위 중 총상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