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열린 버마 미술전 “Freedom in Blossom!”

일본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을 가다

글. 사진 권기봉/warmwalk@gmail.com

후쿠오카는 가까운 해외였다. 비행기는 말할 것도 없고 부산에서는 고속페리로 단 세 시간만에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만큼 여행자도 많아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이용객은 지난 2004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한 이래 대지진과 악화된 한일관계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미술, 나아가 세계를 대하는 시야의 너비에는 가없는 차이가 존재하는 듯 했다. 일부러 후쿠오카를 찾은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중세 이래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려온 후쿠오카 하카타(博多)의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福岡アジア美術館)’에서 군사독재의 빗장이 풀리기 시작한 ‘버마’ 작가들의 현대미술 기획전 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미술관 관람에 앞서 ‘버마’라는 국가 표기가 유독 눈에 띠었다. 국호를 ‘버마’로 할 것인지 ‘미얀마’로 할 것인지를 두고는 지금도 이견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1960년대 이래 지속되어온 군사독재정권이 1989년 들어 기존의 ‘버마’라는 국명 대신 ‘미얀마’라는 새로운 국호를 내세운 이후, ‘미얀마’라 부르는 것은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어서다. 그래서 버마의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지금도 ‘버마’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미얀마’라 칭하고 있으며, 유엔(UN)과 아세안(ASEAN)을 비롯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마저 최근 들어서는 ‘버마’ 대신 ‘미얀마’를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버마’를 고집할 경우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해당국 정부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나치게 풍겨, 자칫 민주화와 국제사회로의 재진입을 유도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미얀마라는 말 자체가 군사독재정권이 ‘발명’해낸 이름이 아니라, 이라와디(Irrawaddy) 계곡 주변에서 1천여 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기에 무리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은 참여 작가들의 뜻을 존중해 ‘버마’라 칭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전시회는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미술활동을 멈추지 않은 ‘강고 빌리지 그룹(Gangaw Village Group)’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다루고 있던 탓이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 산민(San Minn; 1951~) 작가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버마의 밀림을 닮은 강렬한 색채를 바탕으로 군사독재에도 불구하고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버마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과 물신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버마의 현실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는 남녀 차별이나 권위주의와 같은 버마 내부의 사회 모순을 지적하는 동시에 뼈있는 성찰을 촉구하는 작품들이었다. 작품들 사이에 전시되고 있는 강고 빌리지 그룹 동인지는 생소하기만 한 버마의 현대미술과 그 작가들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버마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왜 버마가 아니라 일본 후쿠오카로 가야만 했던 것일까. 지난 1960년대 이래 힘을 응축해온 군사독재정권이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풀어주었으며 총선 참여까지는 허용했지만, 그것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 위한 책략일 뿐 아직까지 버마 사회가 진정한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안갯속이다. 한 마디로 버마에서는 이 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리지 않고 있고, 또 당분간은 힘들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이었다. 



지난 1979년 문을 연 후쿠오카시미술관이 확대 발전해 1999년에 개관한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은 근현대 시기의 아시아 미술작품과 작가들에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 유일의 아시아 전문 미술관’이자, 아시아 현대미술 작품들을 계통적으로 수집해 전시하는 ‘세계 유일’의 미술관이다. 색다른 창의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19세기에서 현재까지의 아시아 근현대 미술작품이 2천7백여 점에 이르는데, 특히 버마나 네팔, 방글라데시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국가의 미술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아시아의 미술작가와 연구자들을 초청해 전시회와 학술대회를 여는 등 교류사업과 연구작업을 열심히 병행해 가는 점도 이 미술관의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로 버마와 수교 40년 째를 맞이한 한국에서는 여지껏 단 한 번도 버마 현대미술전을 개최한 적이 없다. 버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진정성 있게 다룬 전시회 자체가 없었다. 그나마 규모있는 중남미 현대 미술전이 열린 것이 지난 2009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던 것처럼, 그 동안 한국에서는 해외 미술이라고 하면 주로 유럽이나 미국 혹은 중국 등 소위 힘있는 나라들의 미술만을 의미해왔을 뿐 그 외 나라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일천했다.

후쿠오카에 다녀오던 길에 경기도 수원에 들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지난 1970~80년대 지어진 오래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행궁동 골목길에 가면 네팔(Ashmina Ranjit, Saurganga Darshandhari)이나 멕시코(Edgar David Argaez), 그리고 버마(Mrat Lunn Htwann) 작가들이 그린 벽화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골목의 시작점과도 같은 금보여인숙 정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브라질 출신 심브리(Raquet Lessa Shembri)의 ‘골드피쉬(金魚)’와 ‘영조(靈鳥)’는 ‘대안공간 눈’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행궁동의 국제성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과 수원 행궁동 골목길을 균등하게 놓고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을 둘러볼 때에는 시샘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체계적인 작품 수집과 전시 시스템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아시아를 대하는 시야의 너비가 한국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행궁동의 경우처럼 그 동안 서구와 중일 일변도로 편향돼 있던 심미안이 이제는 좀더 깊고 넓어지고 있는 듯하다.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현대미술을 한국에서도 보게 될 날을 그려본다.